나. 바둑의 역사
1. 바둑은 왜 만들어졌을까?
1편에서의 요임금창제설에 따르면 바둑은 ‘어리석은 아들을 가르치기 위해’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바둑을 ‘인생에 있어서 축소판’이라고 하는데, 성왕이 아들에게 인생을 가르쳐주는 교육의 도구가 바둑이었다는 얘기일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이 또한 사실 '어리석은 아들'이라면 바둑을 배우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모순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역시 정확성은 떨어진다.
바둑판 한 가운데의 점을 천원(天元)이라고 부른다는 것과, 바둑판 교차점이 361개인 것이 음력의 날짜 수와 비슷하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바둑이 원래는 역학(易學)이나 천문학의 도구였다는 설도 있으며,
천체 관측설
농경(農耕)사회였던 고대에는 별들의 움직임을 관측하는 일이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이러한 필요성에 따라 우주와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고 연구하는 도구로서 바둑이
발명되었다는 설이다.
특히 고대문명의 발상지이기도 한 황하유역에는 해마다 홍수가 범람하여 선사시대
때부터 자연스럽게 천문학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는데, 당시 하늘의 별자리를 표시하던
도구가 발전되어 오늘날의 바둑이 되었다는 설이 과학적인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심지어 바둑이 원래는 판과 돌을 이용한 계산기였다는 설도 있으나 그 어느 것도 근거가 있다고 말하기는 섣불리 확신할 수 없다.
2. 바둑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그렇다면 바둑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어느 날 갑자기 현재와 같은 형태의 놀이로 등장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많은 이들의 추측이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바와 같이 17줄의 바둑판이 존재했던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최초의 바둑판은 17줄, 혹은 그보다 더 작은 크기였을 것이다.
지금은 9개인 화점의 개수도 과거 중국에서는 5개, 티벳 지방에서 발견된 17줄 바둑판은 13개, 그리고 한국에서 두어졌던 순장바둑판은 17개로 다양하며, 이들 화점을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 바둑의 규칙도 지역마다 국가마다 많이 달랐다. 이들 중 어느 것이 바둑의 원형인지, 그것들은 어떻게 그런 형태의 놀이가 되었는지는 그 어떤 누구도 모른다. 다만 좀 더 작은 사이즈의 바둑판, 그리고 좀 더 많은 개수의 화점이 원형에 가까울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3. 바둑은 어디서 만들어졌을까?
바둑에 관한 가장 오래된 문헌 자료, 기록, 가장 오래된 바둑판 또한 중국에서 발견되어 내려오는것으로 미루어 볼 때, 바둑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거의 확실시 여긴다. 체스의 근원지라는 인도에서 바둑도 시작되었다는 가설도 있지만 그 근거나 신빙성 또한 확인된 바가 없다.
- 우리나라에서는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승려 도림(道林)이 백제의 개로왕과 바둑을
두었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백제문화가 일본에 전파될 때 바둑도 함께 건너간 것으로 추측된다.
일각에서는 기자조선(箕子朝鮮)시대 때부터 바둑이 두어졌다는 설도 있지만,
사실적 근거는 불확실하다.
4.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기보는?
국내 기보로서 가장 오래된 것은 1765년 영조 41년 민백흥(閔百興)이 쓴 <기론>이다.
<기론> 은 서명날인과 기론, 상수도, 기보 등이 편철된 책으로, 이 필사본은
그동안 1900년대 초반에 머물러 있던 한국 기보의 최초 연도를 무려 150년이나 앞당긴 한국 최고(最古)의 기보다.
<기론>은 바둑을 초연수(焦延壽, 한말의 역학자), 사마광(司馬光, 1016∼1086) 등의
역사상(易思想)으로 파악하려한 것이 특징이다.
저자인 민백흥은 바둑을 일개 오락으로 보지 않고 주역의 한 방편으로 이해하려 했다.
5.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래된 기보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즐겨 읽은 중국 유명한 고전소설 『삼국지(연의)』에는 조조와 관우의 바둑에 얽힌 이야기가 실려 있다. 위나라를 세운 조조는 고대의 병법을 통달한 지략가이자 시와 음악, 건축 등 다방면에 조예가 깊었고 특히 바둑을 잘 두었다고 알려져 있다.
촉의 장수였던 관우도 바둑을 좋아해서, 어깨에 화살을 맞는 부상을 당했을 때 마취도 없이 마량(馬良, 187~222)과 바둑을 두면서 당시 중국 최고의 외과 의사였던 화타(華陀, 145~208)의 수술을 견뎠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그러나 사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14세기의 작품으로 거기에 등장하는 내용들을 역사적 사실로 믿기에는 무리인 부분이 다소 포함되어 있다.
관우가 화타에게 수술을 받으며 바둑을 두는 모습
그런데 놀랍게도 삼국지의 세 나라 위, 촉, 오 중에서 오나라를 건국한 손권의 형 손책(孫策, 175~200)이 그의 신하 여범(呂範, 169~228)과 두었다는 바둑이 기보로 남아 있다. 중국 송나라 휘종(徽宗, 재위 1100~1125) 때 편찬된 『망우청락집(忘憂淸樂集)』이라는 바둑책에 이 두 인물의 기보가 실려 있는 것이다. 만일 이 기보가 사실이라면 이는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기보라 할 수 있다.

손책·여범의 바둑 기보를 현대 기보로 옮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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